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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정대, 영원이라서 가능한 밤과 낮이 있다 ㅡ장욱에게

영원이라서 가능한 밤과 낮이 있다

가령 어느 날 밤 홍대 앞을 지나다 너를 만났을 때 문득 물었다, 어디로 가느냐고

너는 마늘을 사러 간다고 말했다

귀신이 사라진 시대에 없는 귀신을 위해 마늘을 사러 간다는 것은 얼마나 아름다운 일인가

코끼리 군은 기다란 코 위에 안경을 걸치고 가끔은 아무도 읽지 않는 탐정 소설을 쓴다고도 했다

옛날 소설에나 나오던 탐정, 탐정이 사라진 시대에 탐정 소설을 쓴다는 것은 얼마나 아름다운가

아무도 듣지 않는 노래를 부르는 가수는 또 얼마나 아름다운가

한밤중에 술을 마시고 사내들은 몇 번을 결혼했던가 몇 번을 죽었던가

백주 대낮에 술을 마시고 여자들은 몇 번을 이혼했다고 몇 번을 새로 태어났던가

거대한 도시에 엄청난 테러가 일어났던 낮에도 애도의 물결이 전 세계를 휩쓸던 밤에도 나는 보았다, 밤하늘에서 위태롭고 쓸쓸하게 빛나는 초승달 하나를

태양 하나를

내가 너를 처음 보았을 때를 기억하는가

내가 너를 처음 보았을 때 너는 그저 우주를 떠도는 희미한 먼지였을 뿐이다

내가 너를 처음 알아보았을 때 너는 조금 더 커진 희미한 형상

내가 너에게 처음으로 말을 걸었을 때 그때서야 너는 가까스로 인간의 형상을 갖추었다

가령 나는 아직 태어나지도 않았는데 너의 경우는 어떤가?

네가 나를 처음 보았을 때를 기억하는가


박정대, 영원이라서 가능한 밤과 낮이 있다 ㅡ장욱에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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